53년 된 체육 병역특례, 정말 필요한가…병력 급감 속 폐지론 다시 확산
최고관리자 · 2026-10-11 00:15:01 · 조회 0
일부 축구·야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금메달 획득 뒤 병역 혜택과 관련해 신중하지 못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오래된 형평성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정치권에서는 제도 개편이나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지고 있고, 국방부도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감축·폐지를 국방개혁 계획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1973년 만들어진 체육인 병역특례 제도가 53년 만에 중대한 변곡점을 맞은 셈이다.
이 제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에서 출발했다.
여기에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 북한보다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정치·사회적 분위기도 강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에서 한국이 은메달 1개에 그친 반면 북한은 금메달 1개를 포함해 여러 개의 메달을 따내자 스포츠를 통한 국가 경쟁력 과시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다.
정부는 선수들의 국제대회 성적을 끌어올릴 동기 부여책 가운데 하나로 병역특례 제도를 선택했다.
1973년 병역특례법이 만들어졌고 체육뿐 아니라 예술, 산업기능요원, 전문연구요원 등 여러 분야가 대상에 포함됐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레슬링에서 금메달을 딴 양정모가 체육인 가운데 처음으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았다.
1981년 시행령이 마련되면서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유니버시아드,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등 주요 국제대회 3위 이상 입상자까지 대상에 포함됐다.
이후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을 거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병역 혜택을 받는 선수가 지나치게 많아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1990년 대상을 올림픽 3위 이상과 아시안게임 1위 입상자로 대폭 축소했다.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기준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 16강과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 4강 진출 선수들에게 한시적으로 병역 혜택이 주어진 적도 있지만, 기준이 즉흥적이라는 비판이 커지면서 2008년부터 사라졌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축구 금메달로 혜택을 받은 장현수가 이후 봉사활동 실적을 부풀려 제출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큰 논란이 발생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는 야구대표팀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병역 혜택을 의식한 대표 선발이 아니냐는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당시 선동열 감독이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같은 해 관계부처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제도 폐지까지 검토했지만 2019년 현행 유지로 결론 냈다.
당시에는 체육·예술요원 편입 인원이 연간 20∼50여명에 불과해 제도를 없애더라도 병력 부족 문제 해소에는 실질적인 효과가 크지 않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하지만 이후 병역 환경은 더욱 빠르게 변했다.
국방 백서 기준 상비 병력은 2012년 63만9천명에서 2022년 50만명으로 감소했다. 한국국방연구원 추계에서는 20세 남성 인구가 2015년 37만2천명에서 2025년 22만5천명으로 10년 사이 약 15만명 줄었다.
제도 도입 당시와는 정반대 상황이 된 것이다.
병역 자원이 빠르게 줄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체육인에게 계속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형평성 논란이 커지는 배경이다.
'국위선양'이라는 명분도 예전과 달라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 이제 국제 스포츠 대회 메달 한두 개로 국가의 위상이 결정되던 시기를 지나 경제와 문화, 산업 전반에서 세계적인 영향력을 가진 국가가 됐다.
특히 병역특례 대상자의 상당수가 프로나 실업팀 선수라는 점도 논쟁의 대상이다.
해외에서 뛰는 일부 선수의 경우 병역 문제 해결 여부에 따라 선수 생활과 계약 조건이 크게 달라질 수 있어 경제적으로 상당한 혜택을 얻는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나이의 일반 청년들이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가운데 체육인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 공정하냐는 질문이 계속 제기돼왔다.
이번 아시안게임은 이런 논란에 다시 불을 붙였다.
야구대표팀은 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5연패를 달성했다.
하지만 일본 대표팀이 프로 중심이 아닌 사회인 선수 위주로 구성된 상황에서 한국 프로 선수들이 금메달과 병역 혜택까지 함께 얻는 것이 적절한지를 두고 비판이 나왔다.
노시환은 결승전 이후 과정에 대한 비판보다는 금메달이라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축구대표팀 선수들의 발언도 파장을 더했다.
한국은 일본을 꺾고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4연패를 달성했지만 일부 선수들이 우승보다 병역 혜택을 강조하는 듯한 발언을 내놓으면서 비판이 이어졌다.
주장 이기혁은 금메달을 들어 보이며 "군대 안 갑니다"라고 말했고, 입대를 불과 9일 앞둔 상황이었다.
양민혁도 메달이나 트로피보다 군 면제라는 보상을 보고 뛰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박승수는 금메달 획득 뒤 '전역모'를 쓴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려 논란을 확대했다.
선수들의 이러한 언행이 알려지면서 병역특례 제도 자체를 다시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해졌다.
정치권에서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개편 요구가 나왔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제도 개편 필요성을 주장하며 이번 아시안게임 금메달부터 병역 혜택을 적용하지 않는 방안까지 언급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도 예체능인 병역 면제 제도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왔다.
정부 역시 제도 축소 방향을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국방부는 최근 예술·체육요원을 포함한 보충역 제도를 궁극적으로 감축하거나 폐지하는 방안을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반영해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병역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국제대회 기준을 조정하려면 병역법 시행령을 바꾸면 된다. 제도 자체를 없애려면 병역법 개정이 필요하다.
병역 자원이 풍부하던 시기에 '국위선양'을 위해 만들어졌던 제도가 인구 감소와 사회적 가치 변화 속에서도 계속 유지될 수 있을지 논쟁은 이제 본격적인 제도 개편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대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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